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레시피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이키 메뉴에 올릴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정확히는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다. 요즘 뭐가 제철이지? 손님들이 좋아할까? 너무 평범한가? 그렇다고 너무 이상하면 안 되는데? 만들기는 쉬운가? 원가는 괜찮나? 재료 수급은 원활한가? 그리고 결국 제일 중요한 것. 맛있나?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갑자기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아진다. 그럴 때 나는 시장에 간다. 멋있게 말하면 식재료 리서치지만, 사실 그냥 기웃거리러 간다. 시간이 있으면 재래시장에 가고, 없으면 가까운 마트라도 간다. 지난주까지 많았던 과일이 사라졌는지, 무엇이 갑자기 시장의 가판대를 차지했는지 본다. “아, 벌써 이게 나왔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 보면 이상하게 머릿속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꼭 시장에서만 음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식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다가 시작되기도 한다. 동네 카페에서 오픈 토스트를 하나 먹은 적이 있다. 빵 위에 이런저런 재료가 올라가 있었는데, 그중 토마토잼이 들어 있었다. 한입 먹는데 이상하게 오래전 기억 하나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릴 때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던 수제 토마토케첩.’ 정확한 레시피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잘 익은 토마토를 오래 끓이던 모습과 새콤하고 달큰했던 맛은 기억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카페에서 토마토잼을 먹은 뒤로 그 기억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토마토는 원래 달게 끓여도 맛있었지.’ 그리곤 파이키의 샌드위치에 들어갈 토마토잼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잘 익은 토마토 1kg에 설탕 250g을 넣고 소금 반 티스푼을 넣고 끓인다. 수분이 많은 토마토가 잼처럼 적당한 점도를 갖도록 펙틴도 조금 넣는다. 그리고 마무리로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넣는다. 계량스푼으로 정확히 재기보다 아빠 밥숟가락으로 두 숟갈 정도 푹 떠서 넣는다.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알갱이가 씹힐 때마다 톡톡 터지고, 산미가 더해지면서 토마토잼의 맛이 완성된다.(다른 버전으로는 바질 잎을 넣거나 여러 종류의 후추를 듬뿍 갈아 넣기도 한다.) 이 토마토잼은 지금 파이키의 샌드위치 안에 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동네 카페에서 먹었던 토스트 하나가 어린 시절 엄마의 토마토케첩을 불러냈고, 그 기억이 다시 지금 내가 만드는 샌드위치 속 토마토잼이 되었다. 내가 새롭게 떠올렸다고 생각한 맛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어디선가 시작된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 배낭여행 중 사귄 친구들의 홈 레시피로 차려진 저녁 식탁, 어느 식당에서 먹고 기억해 둔 맛들. 그런 것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계속 쌓이는 모양이다. 나에게도 나름 음식 데이터가 있는 것 같다.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뿐. 어렸을 때 엄마에게 요리를 물어보면 답도 대부분 이랬다.
“얼마나 넣어?”
“조금.”
“조금이 얼마인데?”
“이 정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먹어 봐.”
지금은 그 말이 조금 이해된다. 요리를 하다 보면 숫자보다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있다. 재료의 상태를 보고, 먹어 보고, 조금 부족하면 더해 보는 것.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감각을 다시 숫자로 바꾸는 일을 한다.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이 오늘은 맛있고 내일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잼을 만들다 펙틴을 공부하고, 구움과자를 만들다 밀가루와 버터의 구조를 공부하고, 발효를 하다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그냥 맛있는 걸 만들고 싶었는데 왜 공부할 게 끝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도 재미있다. 그리고 요즘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기본을 알수록 조금 더 마음 놓고 이상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 기본을 지키고 싶지만 너무 모범생 같은 음식은 만들고 싶지 않다. 익숙한데 뭔가 하나 조금 다른 것.
한입 먹고, “응?” 했다가 한입 더 먹어 보게 되는 것.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그런 쪽인 것 같다. 나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푸드 디렉터라고 해도 되는지 아직 조금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요리하고, 먹어 보고, 망치고, 다시 만든다.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왜 맛있는지 생각하고, 별로라면 또 이유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나만의 기준이 생기고 있다.
계절의 것을 보는 것.
재료의 맛을 너무 가리지 않는 것.
익숙한 것에 조금 낯선 맛을 섞는 것.
그리고 내가 맛있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한 번 권해 보는 것.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맛있는 것을 먹고 오래된 맛의 기억을 하나 꺼내고 거기에 지금의 내 취향을 조금 얹어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 그러다 정말 맛있는 것이 나오면 저울을 꺼낸다. 그리고 숫자를 적는다. 그 숫자는 다음번의 레시피가 된다. 그래서 요즘은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으면 시장에 가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고,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본다. 어쩌면 다음 레시피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을 뿐, 이미 내 추억속과 공부하려 기웃거렸던 요리책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장에서 만난 계절의 기척, 누군가와 나눈 밥 한 끼, 오래전 엄마가 끓이던 수제 토마토케첩의 맛처럼 스쳐 지나간 경험은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르고, 지금의 취향과 만나 하나의 맛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레시피는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고, 기억하고, 좋아하고, 실패하며 지나온 시간이 천천히 쌓였다가, 어느 순간 한 접시의 음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각자의 레시피란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기억이 숙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고유한 맛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