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반가운 손님이라는 직감이 올 때가 있다. 단골 손님은 당연하고 입장부터 궁금한 기운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 시니컬한 유머를 가진 사람들. 아니면 나누는 대화가 굉장히 흥미로워 훔쳐 듣고 싶어지는 사람들.
그 날은 한가로운 7월 초 월요일 저녁이었고, 고수와 백미, 짱모가 바 테이블에서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파인더를 응대할 키퍼는 나 뿐이었다. 그때 낯익은 얼굴의 파인더가 들어왔다. 30대로 보이는 여성 파인더였는데,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 어떤 날에 왔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반가웠다. 그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분과 왔는데, 입구부터 느껴지는 쾌활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들은 오랜 친구로 보였다.
여성 파인더는 자신의 커피와 친구의 쑥단라떼를 함께 주문하시며 얼음을 빼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런 요청은 종종 있기에 대수로울 것 없지만, 얼음이 빠지면 음료 양이 많이 적어보이는데 괜찮은지를 확인해야 했다. 내 말이 거절로 들렸는지 파인더는 약간의 이야기를 더하셨다. 같이 온 친구가 튜브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나는 약간은 당황했고 그때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튜브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 순간적으로 생각난 것은 수술 후의 환자들이 튜브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진하게 과거에 아프셨던 분이겠거니 했다. 큰 반응 없이 얼음을 빼드리겠다 했고, 나는 그냥 음료 양을 넉넉히 드렸다.
두분은 파이키의 쪽지 여러장에다 뭘 잔뜩 적고 계셨다. 파이키에 오는 손님들은 <찾는 사람이 임자> 쪽지를 자주 쓴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도, 대화 내용을 요약하는 메모장으로 쓰기도, 심심풀이 삼행시를 쓰기도 한다. 보통은 추억을 남긴 후 파이키 벽에 붙이고 떠나는 방명록이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한 도구라고,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여성 파인더는 가득 채워진 <찾는 사람이 임자> 쪽지가 여기저기 붙은 책 몇 권을 들고 나에게 왔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셨다. 친구가 쓴 책이에요. 저번에도 와서 책을 두고 갔었는데, 친구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여러권을 가져왔어요. 이걸 파이키에 둘 수 있을까요. ‘친구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라는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빨개져 있었다. 나는 그때도 순간적으로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파이키에 직접 쓴 책을 기증하고 싶어하는 파인더들은 종종 계셨다. 그럴 때의 매뉴얼은, “책을 전시까지 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선물해주셔서 정말 고맙다. 파이키에 감사히 두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뉴얼대로 했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눈치채서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말했다) 파인더는 책을 주고 자리로 돌아가셨다.
한동안 컵을 닦고, 남은 주문을 마무리하고, 그러고 나서야 책 표지를 자세히 봤다. 책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카일 친구 은비가. 상상해보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마음껏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영양공급튜브를 남은 평생 사용해야 한다면요?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음식을 .....(정확한 쪽지 파이키에 있음)”.
이 책들은, 암 치료를 받고 있는 한 남성이, 자신의 삶과 죽음과 사랑과 종교에 대해 쓴 책들이었고, 여성 파인더는 친구의 책들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로 번역해 책 표지에 붙여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됐다. 그들이 왜 한시간 넘게 너무나 열심히 쪽지를 쓰고 있었는지, 왜 튜브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친구가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나는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들은 그런 무게로 받으면 안되는 거였다. 나는 바테이블에서 일하고 있던 키퍼들에게 북박스 재고가 있는지, 저들에게 그걸 만들어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고, 새 탐험카드를 한장 들고, 책선반을 구경하고 있는 그들에게 갔다.
이제야 책을 자세히 봤고, 너무 귀중하고 용기있는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카일님의 북박스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탐험카드를 적어주시면 박스를 만들어드리겠다 말씀드렸다. 파인더 은비가 중간에서 대화를 도왔고, 그러다가 카일과도 대화하게 됐다. 파인더 카일은 너무나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싱가폴 사람이었고, 퀴어이고, 은비와는 12년지기 친구이며, 싱가폴은 너무나 틀에 박힌 나라라 추천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은비는 카일이 멋진 디자이너였다고 첨언했고, 카일은 은비가 항상 자신을 도와주는 따뜻한 친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은비가 최근에 엄마가 됐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