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가을, 처음 ‘파이키’라는 공간이 문을 열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이유로 지속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고민 하고 있는지’ 등입니다. 그럼에도 한 번도 글로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던 이유는 뭐랄까요,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소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공간의 경험으로 메시지를 충분히 전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고민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종의 이유에 더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목적까지 달성하느라 바쁘게 5년을 보냈습니다. 5년이네요. 5년이라니.. 처음 파이키가 문을 열었을 때는 20대 였는데, 어느새 30대의 가운데에 들어섰습니다. 돌아보니 그때와 지금은 외모도(n) 사고도(p) 조금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동료들과 5주년 기획 회의 자리에서 파이키의 지난 시간을 사진으로 돌아봤습니다. ‘아 저때는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맞아. 당시에는 그런 접근을 했지.’ 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초심’이랄 만큼 대단한 것들은 아니고 당시에는 세상의 어떤 면을 보고 무엇을 고민했는지가 드문드문 떠오르더군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또 완전히 잊은 생각도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난 5년을 정리해보자.”
‘지난 5년’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시간 안에는 사소하고도 치열한 고민들이 가득합니다. 지나는 순간에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결정을 했는지 정리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과정이 궁금한 파인더도 있겠지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싶은,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 이의 고민을 하나씩 풀어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파이키(FiKee)’라는 이름을 정한 과정입니다.
파이키에 자리하면 이런 내용의 카드가 음료와 같이 나옵니다.
“파이키는 (읽는)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입니다. 방향을 탐색하고, 방법을 연구하고, 도구를 챙기고, 식량을 보관하는 기지이기도 하죠. 이곳에서의 여정으로 여러분만의 탐험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찾는 사람이 임자, 파이키”
‘탐험’ ‘베이스캠프’ 등 대부분의 단어는 처음 파이키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랐지만, 지금의 소개를 구성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간의 장소성이나 역할, 제공할 콘텐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한바구니에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파이키의 시작이 된 문장은 이렇습니다.
“찾는 사람이 임자”
5년 전 여름 우리(현재의 키퍼 짱모, 알밤)는 어떤 구상도 없이 공간부터 계약 한 뒤, 오픈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직전까지도 ‘커리북’ ‘책방 소서’와 같은 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오던 중이었는데, 결과는 좋고 나쁨도 아닌 무반응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책이 너무 무겁다’는 핑계를 대며, 소비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책과 읽는 행위를 좀더 가볍고 밝게 전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책의 효용성에 대해 합의를 이루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은 만큼 세상을 다채롭게 볼수 있다’ 한 마디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일 때면 책부터 찾던 셋의 공통점 이었죠. 하지만 ‘책을 가볍게’라는 고민 끝에 다다른 문장이 ‘아는 만큼 보인다’라니 너무 지루한 표현이었습니다. ‘읽은 만큼 세상이 달리 보인다.’ ‘하나의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다.’ 이같은 사고의 흐름을 헤매던 중 한창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던 알밤이 이런 문장을 뱉었습니다.
"finders keepers, losers weepers"
우리 말로 하면 ‘찾는 사람이 임자’, 짜릿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를 무언가를 찾는 행위로 표현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본인만의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며 그것을 찾음으로 마침내 임자, 주인이 될수 있다. 찾는 사람이 곧 임지다.’ 그렇게 브랜드의 첫 문장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책, book, 書’와 같은 단어가 직접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책이 지닌 가치를 담아낸 문장이었습니다. 문장의 앞 글자를 따 Fi+Kee, 지금의 파이키가 되었습니다. 중심이 되는 브랜드의 첫 문장이 정립되니, 우리만의 브랜드 구조를 만드는 것은 순조로웠습니다.
finder → 읽는 사람 → 찾는 사람 → 끊임없이 헤매는 사람 → 탐험가 → 손님
keeper → 공간을 지키는 존재 → 조력자 → 탐험의 동행자 → 또 다른 파인더 → 직원
FiKee → 휴식과 채비 → 용기 → 마주침과 연결 →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
문장의 앞 절반, 파인더(finders)는 이곳에 오는 손님입니다. 그들은 읽는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찾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끊임 없이 헤매는 사람’으로 학장됩니다. 그들은 탐험가입니다.
문장의 남은 절반인 키퍼(keepers)는 우리들, 직원입니다. 공간을 지키며 파인더들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탐험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키퍼는 곧 파인더이기도 하며 탐험의 동행자입니다.
파이키(FiKee)는 파인더가 탐험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는 장소입니다. 다시 탐험을 떠날 채비를 하는 곳이며, 부득이하게 잃어버린 탐험심을 다시 떠올리는 용기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른 파인더를 마주하기도 하는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입니다.
이것이 파이키를 구성하는 세 가지입니다. 이건 장사의 기본 구조와도 같습니다. 손님과 직원, 그들이 마주하는 매장의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표현하면 매장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되고, 직원이 서비스나 상품을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차원적인 구조가 됩니다.
이런 구조를 우리식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이런 표현의 차이가 꽤 큽니다. 표현을 바꾸고 의미를 담으면, 파이키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로 파인더와 파인더, 파인더와 키퍼가 서로 공감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교류하는 하나의 장이 됩니다.
이렇게 용어를 설정하고 나면 나름대로 결정의 기준도 세울 수 있습니다. 공간을 구성하고 채워나갈 때는 ‘파인더가 얼마나 편안한가’를, 콘텐츠를 기획할 때에는 ‘파인더에게 어떤 용기를 줄 수 있는가’가를, 접객에서는 손님과 직원의 관계가 아닌 ‘동료이자 동행자’를 기준에 둡니다.
일반적인 장사의 구조 — 일차원적 수직 구조
매장 (단순 물리적 공간)
직원 → 서비스 제공 / 상품 전달 → 고객
파이키의 구조 — 입체적 관계 구조
베이스캠프 (파이키)
키퍼 (조력자) ↔ 교류 (영향 / 공감) ↔ 파인더 (탐험가)
이렇게 파이키라는 이름을 걸고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탐험가들의 베이스캠프가 되겠다던 거창한 의도와는 달리 5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많은 것이 깎이고 무뎌졌습니다. 파인더의 연결을 도모하기 위해 매장 한 가운데에 놓였던 과하게 큰 테이블이나, 지금은 멈춰버린 ‘파이키와 40인의 파인더’와 같은 것들이죠. 기획하고 꿈꾸던 것들은 매출과 영업이익, 임대계약 갱신이나 돌연 찾아오는 여러 순간들 앞에서 너무나도 쉬이 잊혀지더군요. 글을 적다보니 무뎌진 부분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지난 시간들에 무뎌진 것과 더욱 선명해진 것들을 차근차근 전해보겠습니다. 우리만의 형태로 다듬어 가고 또 어떤것은 온전히 내버려둘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